
아내 생일이라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이 참 많았어요. 평범한 곳은 싫고, 그렇다고 너무 격식만 차리는 곳도 부담스럽고. 그러다 떠올린 곳이 본연이었어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원투쓰리'로 나왔던 배경준 셰프가 운영하는 한식 파인다이닝인데, 전국 각지의 제철 식재료를 장작불과 발효 기법으로 풀어낸다는 콘셉트가 끌리더라고요.
기본 정보
- 상호: 본연 (Bornyon)
-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 742, 파티오나인 7층
- 전화번호: 0507-1434-0923
- 영업시간: 17:30 - 22:30 (라스트오더 19:30)
- 정기휴무: 매주 일요일, 월요일
- 주차: 건물 지하 주차장 최대 3시간 무료 (지상 주차장은 이용 불가)
- 예약: 캐치테이블 앱
- 참고: 노키즈존 (중학생 이상 이용 가능)
흑백요리사 '원투쓰리', 배경준 셰프의 공간


7층에 올라가면 탁 트인 도심 전경이 먼저 눈에 들어와요. 프리츠 한센 가구로 꾸며진 공간이 고급스러우면서도 편안한 느낌이에요. 장작불 오픈 키친이 보여서 요리하는 과정을 살짝 엿볼 수 있는데, 이게 은근히 기대감을 올려줘요.
배경준 셰프는 미국 CIA(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Gramercy Tavern, 서울 모수(Mosu) 등 미슐랭 1·2·3스타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요. 별명이 '원투쓰리'인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흑백요리사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었는데, 직접 그 셰프의 레스토랑에 앉아 있으니까 묘하게 설레더라고요.
주류 주문은 필수 — 술을 안 하면 좀 아쉬운 부분

본연에서는 식사와 함께 맛 마중(페어링)을 주문해야 해요. 가격대를 보면:
- 네 가지 어울림 (4 Wine Pairing): 110,000원
- 일곱 가지 어울림 (7 Wine Pairing): 230,000원
- 차(茶) 어울림 (논알콜 페어링): 90,000원
저는 술을 즐겨 하는 편이 아니라 이 부분이 솔직히 좀 아쉬웠어요. 논알콜 차 페어링 옵션이 있긴 한데, 추가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그래도 파인다이닝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해는 되는 부분이에요. 디너 코스 가격은 1인 230,000원이에요.
4월 Season Roots 코스 — 전국 각지의 계절을 한 접시에

본연은 한국의 24절기에 따라 코스 구성이 바뀌어요. 이번에 먹은 건 4월의 Season Roots 코스인데, 각 요리마다 전국 각지의 지역명이 붙어 있어서 마치 음식으로 여행하는 느낌이었어요. 하나하나 이야기해 볼게요.
작은 한입 — 두 가지


코스의 시작은 작은 한입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는 연근인데, 은은한 훈연향이 감돌고 안쪽에 건새우가 들어 있었어요.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인데 훈연향과 건새우의 짭조름한 감칠맛이 입맛을 확 열어주더라고요.
두 번째는 타르트 형태였는데, 아래 접시에서 메주 맛이 나고 구운 서리태와 위에 감태가 올라가 있었어요. 한식 재료를 이렇게 타르트로 풀어낼 수 있구나 싶었어요. 짧은 한입이지만 이 코스에서 어떤 맛의 여정을 하게 될지 기대하게 만드는 시작이었어요.
통영 갑오징어 × 성주 참외

솔직히 조합을 듣고 '이게 어울릴까?' 했어요. 갑오징어와 참외라니. 근데 한 젓가락 먹어보는 순간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참외의 상큼함과 갑오징어의 부드러운 식감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겉으로 봤을 때는 뭐가 참외이고 뭐가 갑오징어인지 구별도 안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고, 소스까지 더해지니 상큼하고 부드러우면서 감칠맛이 쭉 이어지더라고요. 이 코스에서 첫 번째로 '와' 했던 접시예요.
부여 밤 × 지리산 백강밀

밤소스에 국수를 얹은 요리였어요. 맛은 분명히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밤소스의 맛을 뚜렷하게 느끼지 못했어요. 국수 자체는 부드러웠고 함께 나온 재료들과의 조합은 나쁘지 않았는데, 밤이 주인공인 요리라고 하기엔 밤의 존재감이 조금 약했달까요. 이건 제 입맛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참고만 해주세요.
영광 보리 × 완도 멸치

멸치가 어디 있지? 했는데, 빵 안에 숨어 있었어요. 멸치 맛이 확 나는 건 아니고, 보리가 들어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고소한 풍미가 주를 이뤘어요. 파인다이닝에서 빵이 나올 때 그냥 식전빵처럼 무심코 먹기 쉬운데, 이 빵은 재료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으니까 꼭 천천히 음미하면서 드시길 추천해요.
장성 참두릅 × 강경 갈치속젓

이 코스에서 제일 맛있었던 요리예요. 두릅이 소고기 맛이 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는데, 정말 고기를 먹는 것 같았어요. 두툼하게 조리된 두릅의 식감이 근사했고, 여기에 갈치속젓 소스를 같이 먹었을 때 감칠맛이 폭발하더라고요.
원래 삼겹살에 갈치속젓 찍어 먹는 걸 좋아하는데, 두릅과 함께 먹어도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어요. 갈치속젓의 짭조름하면서 깊은 발효 감칠맛이 두릅의 고소한 풍미를 한층 끌어올려주는 느낌이었어요. 이 한 접시만으로도 본연에 온 보람이 있었어요.
완도 전복 × 제주 월동무

전복이 정말 부드럽게 잘 익어서 식감이 너무 좋았어요. 근데 여기서 의외의 주인공은 무였어요. 제주 월동무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무 자체의 달큼한 맛이 잘 살아 있었고, 아래 깔린 비트소스와 함께 먹으니까 색감도 예쁘고 맛의 조화도 훌륭했어요. 전복과 무, 비트소스 세 가지가 한입에 들어갔을 때의 밸런스가 정말 좋았어요.
담양 표고버섯 × 양양 잎새버섯

엄청 건강한 맛이었어요. 버섯에서 은은한 훈연향이 났는데, 장작불로 구운 흔적이 느껴지더라고요. 함께 나온 리조또도 작은 한입 분량이었지만 버섯의 깊은 향과 잘 어울렸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하고 정직한 맛이라 코스 중간에 입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해줬어요.
제주 흑돼지 × 제주 멜젓

굽기를 선택할 수 있어서 미디움 레어로 주문했어요. 돼지고기인데 굽기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육질이 부드럽고 멜젓과의 조합도 나쁘지 않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제가 직접 구워 먹는 게 더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인다이닝 코스에서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 옵션이 있었다면 추가 금액을 내더라도 그쪽을 선택했을 것 같아요. 이건 순전히 개인 취향이에요.
당진 토마토 × 안동소주



이게 정말 신기했어요. 토마토로 만든 샤베트 아이스크림 위에 안동소주를 스포이드로 한 방울씩 떨어뜨려 먹는 거예요. 처음엔 '안동소주를 디저트에?' 싶었는데, 한 방울 떨어뜨리고 먹어보니까 토마토의 상큼함에 소주의 알싸한 향이 더해져서 너무 맛있었어요. 자꾸 한 방울 더, 한 방울 더 떨어뜨리게 되더라고요. 코스 후반부에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면서 재미까지 있는 요리였어요.
바나나 × 순창 고추장

어딜 봐서 바나나이고 고추장인가, 했어요. 비주얼만 봐서는 전혀 감이 안 오는 메뉴였거든요. 근데 먹어보니까 바나나의 달콤한 맛 뒤에 은근히 고추장의 매콤한 뒷맛이 올라오는 게 신기했어요. 생각보다 맛있었고, 이런 조합을 떠올린 셰프의 상상력에 감탄했어요.
마무리 — 치즈케이크와 마들렌

진짜 마지막으로 디저트까지 챙겨주셨어요. 치즈케이크에서는 깻잎 맛이, 마들렌에서는 참기름 맛이 났어요. 마지막까지 한식 재료에 대한 셰프의 고집이 느껴지는 마무리였어요. 깻잎 치즈케이크라니, 처음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데 먹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맛이에요.
이런 분께 추천해요
- 생일, 결혼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의미 있는 식사를 하고 싶은 분: 코스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있고, 공간 분위기도 좋아서 기념일 식사로 안성맞춤이에요
- 한식 파인다이닝이 궁금한 분: 양식 파인다이닝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전국 각지의 제철 식재료로 구성된 코스라 한 끼로 한국 곳곳을 여행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 흑백요리사에서 배경준 셰프가 인상적이었던 분: 방송에서 보여준 실력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어요
참고할 점
- 주류 페어링이 사실상 필수에 가까워요. 술을 즐기지 않는 분은 추가 비용이 부담될 수 있어요
- 노키즈존이에요. 중학생 이상부터 이용 가능하니 아이 동반 시 참고하세요
- 예약은 캐치테이블 앱으로만 가능하고, 인기가 많아서 넉넉히 미리 예약하는 게 좋아요
- 2인 기준 코스 460,000원 + 페어링 비용이 추가되니 전체 예산은 넉넉히 잡고 가세요
종합 평가
전국 각지의 신선한 제철 식재료, 장작불과 발효로 풀어낸 독창적인 한식 코스, 7층 루프탑에서 바라보는 도심 전경까지. 음식과 맛, 분위기 세 박자가 모두 갖춰진 곳이에요.
좋았던 점:
- 통영 갑오징어×성주 참외, 장성 참두릅×강경 갈치속젓 등 예상치 못한 식재료 조합이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렸어요
- 코스 구성이 전국 각지 지역명으로 되어 있어서 한 끼 식사가 마치 음식 여행 같았어요
- 공간이 고급스러우면서도 과하지 않아서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었어요
- 당진 토마토 × 안동소주 샤베트처럼 먹는 재미까지 있는 요리가 코스에 포함되어 있어요
- 마지막 디저트까지 깻잎, 참기름 같은 한식 재료로 일관성을 유지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아쉬웠던 점:
- 주류 페어링이 사실상 필수라 술을 즐기지 않는 분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어요. 차 페어링(90,000원)이 있지만 선택지가 제한적이에요
- 제주 흑돼지 코스는 개인적으로 소고기 옵션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 부여 밤 국수는 밤소스의 존재감이 다소 약하게 느껴졌어요
마지막으로
아내 생일에 본연을 선택한 건 정말 잘한 결정이었어요. 코스 하나하나에 전국 각지의 제철 재료가 담겨 있고, 익숙한 한식 재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조합되어 나오는 경험이 특별했어요. 특히 장성 참두릅과 갈치속젓의 조합은 지금 글을 쓰면서도 생각나는 맛이에요.
특별한 날, 의미 있는 한 끼를 찾고 계신다면 본연 꼭 가보세요. 가격대가 만만치 않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경험이었어요. 주차는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최대 3시간 무료이니 참고하시고, 예약은 캐치테이블에서 미리미리 잡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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